<북 리뷰> 열한 계단
글쓴이 채사장
출판사 whale books
출판일 2016.12.10.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읽으며 도대체 이런 글을 쓴 채사장(저자보다는 왠지 필명인 채사장이 더 친근하다.)이라는 사람은 어떤사람일까 너무 궁금했다. 특히 그 시리즈 중 마지막에 나온 제로편은 어마어마한 통찰력이나 삶의 지혜가 쌓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글이라 나이가 지긋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작가가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본 적은 별로 없는데 나로 하여금 채사장의 이력이 뭔지 찾아보게 했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찾다가 이 열한 계단이라는 책이 채사장의 성장 과정을 열한 계단으로 묘사를 한 책이라는 것을 알았고,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보니 결론적으로 채사장이 어떻게 해서 그런 글들을 쓸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이 되었다.
특히 이 책은 너무 좋아서 도서관에 반납한 후 소장용으로 사고도 더 여러권 사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한 책이기도 하다. 아직도 선물하고도 두권이 남아있다. 채사장과 같이, 나와 같이 이런 고민을 하거나 이 책을 읽고 너무 좋아할만한 지인이 생기면 바로 선물하려고...
작년에 읽은 책인데 이제서야 정리해본다.
일단 서론에서 저자는 익숙한 책과 불편한 책 중에 불편한 책을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불편하다는 것은 내가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이기에 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편함은 설렌다. 어떤 책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방금 새로운 대륙에 도착했다는 존재론적 신호다. 이제 기존의 세계는 해체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 더 높은 단계에서 나의 세계가 재구성될 것이다. 하나의 계단을 더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불편함을 권한다."
첫번째 계단은 문학이다.
채사장은 고등학교 성적은 좋지 않았고 문과생 중 수학은 거의 꼴등을 했다고 한다. 고3이 되서 문예반에서 '죄와 벌'이 두껍고 멋져보인다는 이유로 첫번째 읽을 책으로 골랐고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인생이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문학을 전공해야겠다는 의지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며 동시에 세계문학을 읽기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현행 교육에 대해서 비판하는 말을 한다. 이 부분은 나도 너무 공감하기에 한번 올려본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반대로 그들이 너무나 성숙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영혼이 받아들이기에 정규 교육의 단조로움은 너무나도 하찮다. 학생들은 똑똑하다. 그들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진리의 문제, 사회 정의의 문제, 존재의 문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나의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놀랍도록 심오하다. 반면에 현행 교과는 그들이 바보가 되기를 원하다. 단순 암기와 기계적인 문제 해결 능력만을 강조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 넘어가면 학생들은 질문을 멈춘다. 성숙하고 똑똑한 학생일수록, 주체적이고 심오한 학생일수록 현행 교육 시스템에 적응할 수가 없다."
두번째 계단은 기독교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기에 재수를 하게되었고,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읽어달라고 했던 신약 성서를 접하게 되었단다. 처음에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이걸로 충분한가 정말 믿음만 있으면 모든 죄는 용서받는가, 인간은 스스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초라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이 자라났다.
세번째 계단은 불교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자기세계에 빠져 살던 채사장은 몽골로 봉사활동을 갔다. 몽골의 밤하늘은 어두웠지만 쏟아질 듯한 별들,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렇게 밤하늘을 보다 문득 완벽한 순간을 느꼈단다.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제 그만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였다. 그 순간 너무나도 맑은 정신 속에서 나는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나의 삶 전체를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그것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느낌이었다. 잠시나마 인생 전체를 조망한 느낌. 아름다운 자연 속에 너무도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 있는 완벽한 순간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신이 준비해놓은 가장 완벽한 순간임을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
아마도 저 순간 다른 선인이나 철학자들처럼 나와 자연과 우주가 하나되는 깨달음을 느꼈던 것 같다.
채사장은 그후 철학과 과학에 몰두했고, 그러다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불교의 스스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르침에 끌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면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후 채사장은 어느 한 종교가 아닌 기독교도 불교도 다 같이 간직하고 다음 계단으로 오른다.
네번째 계단은 철학이다.
채사장은 국문과 보다는 철학과 수업이 더 좋았단다. 그리고 여름방학때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동해부터 시작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잠은 절이나 교회의 문을 두드려서 해결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구경하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꺼내 읽었다. 그 책 안에서 신의 죽음, 초인, 영원회귀등에 대하여 읽으며 채사장은 삶에 대하여 깨달은 것 같았다.
"하늘이 아니라 대지를 걸어가야겠다. 걸어가면서 만나는 모든 것과의 영원한 순간을 긍정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다섯번째 계단은 과학이다.
종교와 철학쪽에만 관심을 두었던 채사장은 불편한 과학책을 읽기 시작한다. 얼핏 생각하면 철학과 과학이 다른것 같지만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 등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다. 특히 과학을 전공했었던 나는 물리나 지구과학은 과학이라기 보다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채사장도 과학책을 읽다가 상대성원리나 다중우주에 와서는 우주의 탄생과 소멸 인간의 존재 가능성등에 관하여 의문을 품게 되었다.
여섯번째 계단은 이상이다.
채사장은 군대에 가서 안병장이라는 이상적인 사람을 만났고 체 게바라라는 이상적인 혁명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장에서는 체 게바라와 안병장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이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곱번째 계단은 현실이다.
채사장은 대학때까지는 이상에 치우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현실에 치우쳤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회사를 다니며 부동산 투자와 주식투자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자본주의에 대한 책인 공산당 선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때 채사장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약해짐을 느낀다.
여덟번째 계단은 삶이다.
채사장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차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눈 앞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살아남은 채사장은 그 무력한 시절에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하고 병원에 있으며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를 들었다.
아홉번째 계단은 죽음이다.
앞의 사고에서 죽음을 목격한 이후 무료한 삶을 보낸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혼자있을 때는 이상한 상상에 빠졌는데 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몇가지 근거가 있었다. 첫 번째 근거는 사고 당시 내가 너무 멀쩡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상처 하나 없이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럴 수 있는 종류의 사고가 아니었다. 두번째 근거는 의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르던 차가 멈추었을 때, 내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고 전에는 승합차의 중간에 타고 있었지만, 멈춘 다음에는 가장 마지막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의심했다. 혹시 내가 죽은 건 아닐까? 그걸 모르고 혼자 이렇게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나는 지금 병원의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의식불명 상태에서 나는 살아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부분을 읽으면 나는 채사장이 살아있는 다른 평행우주로 이동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읽은 평행우주에 대한 책은 다른 리뷰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채사장은 회사를 나오고 놀면서 글을 쓰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단다. 그러다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티벳 사자의 서'를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쓴 파드마삼바바는 티벳 최고의 성인으로 죽음의 순간 이후에 어떤 단계를 거쳐 다음 생으로 나아가는지가 자세히 적혀있다.
열번째 계단은 나이다. 위 사건이후 동굴에 갖혀있던 채사장은 서서히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하며 책도 내고 팟캐스트도 진행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작 관심있어 하는 비밀에 관한 이야기, 특히 나, 자아, 우주, 진리등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있어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베다의 '우파니샤드'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베다는 힌두교와 불교의 기원이기도 하다. 업은 윤회하며, 깨달음에 이르면 윤회를 끊고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이론은 불교와의 공통점이다. 다른점은 자아에 대한 입장인데 우파니샤드는 고정불변한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아트만 이라는 자아를 상정하며 불교는 고정불변의 자아가 아닌 무아를 주장한다. 우파니샤드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종합적으로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유일한 관조자요, 관찰자요, 보는 존재로서의 아트만과 그 아트만에 의해서 구성되는 외부세계인 브라흐만이 사실은 동일한 것이라는 당연하고도 명료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는 도움이 됩니다. 바로 당신이 이 세상이 유일한 주인공이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결국 채사장은 우파니샤드를 종교와 사상을 떠나서 내가 누군지 세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와 세상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에 여기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난 이 열번째 계단의 내용에 대해서 사실 나의 내면에서는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었지만 채사장의 특징인 어려운 의미를 너무 이해하기 쉬운말로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감동이었다.
마지막 계단은 초월이다.
마지막 장의 시작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든 나란 존재는 그렇게 홀로 무한한 시간 동안 세상을 여행할 것이다. 여행자. 그렇기 모든 나라는 존재의 직업이고 숙명이다. 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고 즐기며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그러한 길고 긴 여행 중에서 우리는 운명처럼 성장할 것이다.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이름은 초월이다."
너무 멋진말이다. 채사장의 통찰력도 감탄스럽지만 이렇게 문학적이고 감동적으로 쉽게 표현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럽다.
이번 리뷰는 내가 기억을 떠올릴 겸 다시 한번 읽어가며 썼는데 읽으면서도 또 다시 감탄스럽다.
개인적으로 참 아끼는 책이라 나도 한번씩 되새겨보고 내가 느낀 이 감동을 다른 사람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단계별 내용 위주로 상세히 리뷰를 적어보았다.